한줄평
이 책은 시간 해방을 향해 떠나는 여정이다.
목차
1부 사라진 시간
- 지나친 노동량
- 텅 비어 가는 노동
- 노동의 본질과 변화
2부 사라진 의미
- 가짜 노동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 해결책이 불러온 문제들
- 남에 대한 모방을 멈추자
- 우주에서 지구로 복귀하자
- 긍정이 지배하는 사회
- 무의미한 노동시간 줄이기
- 노동시간에 대한 관념 버리기
- 사람을 믿자
3부 시간과 의미 되찾기
- 노동과 인간의 본질
- 변화를 위한 우리의 전략
- 관리자를 위한 의미 있는 조언들
- 가짜 노동 없는 사회
1부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일하는지, 대체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이 일하는지 알아본다.
2부에서는 취재원들을 만난다. 그들을 직장에 너무 오래 묶어두고 무의미한 행동을 하게 하는, 의미 상실과 부조리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부에서는 해결책으로 시간과 의미를 되찾는 방법을 알아본다. 가짜 노동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사라진 시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조그맣고 표준적인 주택들에는 모두 과하게 큰 정원이 딸려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텃밭임을 알 수 있다. 미래에는 텃밭에서 먹을 걸 마련한다고? 녹색혁명은 어디로 갔지? 현대에 값싼 당근과 저렴한 가공식품을 선사한 농업의 기계화는 어떻게 된 걸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의 미래 전망은 그저 과거로의 비약적 뒷걸음질일 뿐인 걸까? 현대인의 시각으로 <브로드에이커 시티>를 한눈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일단 개념 자체가 난감하다. 라이트의 미래 도시에 대한 전망은 오늘날과는 꽤 사고방식이 달랐던 시대의 산물이고 우리가 아는 현재와 전혀 닮지 않은 미래를 그린 작품이었다.
1930년 프린스턴 대학교 강의에서 라이트는 미래 도시를 풍부한 공간과 여유 시간이 있는 곳으로 전망했다. 일과 사생활이 엄격히 분리되고 "노동자들은 오전 10시에 도시로 몰려왔다가 오후 4시면 쫙 빠져나갈" 것이다. 일주일에 사흘만 그렇게 일하고 나머지 4일은 <브로드에이커 시티>에서 정원을 돌보며, 삶을 즐기고 자연과 교감한다.
라이트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건축가일 것이다. 독특하고 풍부한 아이디어를 가진 것으로 유명했던 그의 작품 중에서 <브로드에이커 시티>는 가장 유별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미래 예측을 꽤 잘 대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텃밭이 딸린 목가적인 미래 주거지에 대한 발상이 유행했기에 라이트의 구상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그런 미래는 불가피해 보였다. 고층 빌딩이 들어선 대도시의 품위 없는 환경에 등을 돌린 최초의 건축계획이 <브로드에이커 시티>였을 수도 있지만, 짧은 노동시간과 풍부한 여가라는 미래 삶에 대한 전망 자체는 독창적인 게 아니었다. 그건 미래에 대한 일반적인 추측이었다. 정리하자면, 과과의 영광을 복원시킨 이 먼지투성이 모형은 활기차고 역동적인 미래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준다. 그리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만 그렇게 보았던 것은 아니다.
라이트가 프리스턴 연단에 섰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케인스는 마드리드 무대에 섰다. 여기서 제시된 케인스의 전망은 오늘날 우리에게 라이트 못지않은 잘못된 예측으로 보인다. 그는 미래에 여가 시간이 너무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드리드의 강연은 "더 이상 큰 전쟁도, 엄청난 인구 증가도"없을 거라는 가정하에서, 케인스 나름의 예측에 의한 명확하고 당연한 결과였다. 이 강연은 그의 논문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학적 예측」에 정리돼 있다. 이 논문에서 케인스는 1930년까지의 추세에 근거해 "100년 내로 경제적 문제는 해결될 수 있거나 적어도 해결 방법이 보이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과 2030년까지 평균 노동시간은 주 15시간이 될 것이며 그 시간조차 경제적이기보다는 인간적 필요를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으로 다가올 많은 시대에도 고대 인간의 본성은 우리 안에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며 모두 만족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케인스는 말했다. 달리 말하면, 그는 미래의 짧은 노동시간을 일종의 치료 수단으로 보았다. 또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여가 시간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빵을 버터 위에 얇게 펴 바르도록, 즉 여전히 필요한 노동을 최대한 넓게 공유하도록"해야 한다고 썼다.
1930년 마드리드의 케인스는 힘든 노동으로 속죄해야 했던 성경 속 아담의 문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기술과 풍요로 노동이 불필요햊진 2030년 지구에서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인간의 가장 큰 문제 일 거라고 생각했다. 케인스에 의하면 미래의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했다. 그것은 '삶의 기술 그 자체'로서 사람들이 진짜 도전해야 할 문제는 그 모든 자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일 것이었다.
예상과 너무 다른 현재
1932년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60세에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냈다. 노동시간 다축이라는 단 하나의 요소를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 건설을 궁리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그의 생각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러셀을 경악시킨 것은 전쟁 자체라기보다는 전쟁 기간 동안 증대한 번영이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불꽃놀이를 처음 발견한 아이들"을 연상시킬 정도의 열정으로 전쟁 기간 동안 생산력이 엄청나게 증대되었다는 것이다. 총알 제작이나 총 쏘기에 엄청난 인력이 투입되어 생산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전쟁에 투입되었다가 돌아오는 평화로운 시기에 기존 대비 절반 이하의 노동시간으로도 같은 번영을 이룰 수 있을 듯했다. 1932년 러셀은 하루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자는 안을 ㅈ제시했고 당시 많은 지식인이 동의했다. 그러나 종전 이후 러셀의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왜 하루 4시간 노동이 도입되지 못했을까? 러셀에 따르면 '노예 상태의 법칙'과 종교 때문이었다. 개신교는 노동을 그 자체로 숭배하며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로 보았다. 할 일이 적으면 어른은 술을 마시고 아이는 못된 짓에 빠지게 된다는 주장도 많았다. 러셀은 그 반대임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즉 게으름은 개인뿐 아나리 문명사회 전체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러셀은 사람들이 집에서 놀지 않고 굳이 일터에 나와 일하려 하는 것을 의아해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4시간 근무 후 집에 가는 사회가 더 멋진 삶을 가져올 뿐 아니라 더 고상한 문화를 낳는다고 보았다. 우리 문명의 위대한 진보, 위대한 예술 작품과 기념비적 과학 발견은 노동자들이 아닌, 여가라는 사치를 즐기는 계급에서 비롯됐다. 고대로부터 문명과 교양 있는 개인을 만들어낸 것은 노동으로부터의 자유였다.
하지만 러셀에 의하면 1932년의 미국인들은 여가에 혐오감을 품고 있었다. 이들은 심지어 ㅈ자기 자식들조차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느라 문화와 교양을 즐길 시간이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러셀은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데도 문화와 교양을 즐길 시간을 없애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계들이 발명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노동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멍청한 짓이었다. 영원히 어리석을 짓을 할 이유는 없다."
하루에 4시간만 일하게 되면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질 것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러셀도 그 부분을 인정하지만 늘 그래던 건 아니라고 반박했다. "속 편하게 놀 수 있었던 과거의 능력이 효율성을 숭배하는 풍조에 의해 어느 정도 억제돼왔다." 그런 이유로 자유 시간은 수동적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그 시간에 영화관이나 축구장에 가거나 라디오를 듣게 됐다. 러셀은 이를 과도한 노동 탓으로 돌린다.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게 된 것은 일이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우리가 여전히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일을 덜하게 되면 다른 것을 추구할 여력이 더 생긴다. 예를 들어 한때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포크댄스는 모두가 즐기는 여가 활동이었으나 1932년에는 옛 추억에 지나지 않게 돼버렸다. 그런 데 쓸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유한계급은 촌스럽고 억압적이었으며 늘 그렇게 총명하지는 않았다.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것을 거의 전적으로 일궈냈다. 예술을 기르고 과학을 발견했다. 책을 쓰고 철학을 발명하고 인간관례를 보다 정교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피지배 계급의 해방조차 윗계습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한계급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야만에서 찰출할 수 없을 것이다."
러셀이 1932년에 쓴 에세이에 오늘날 우리에게 해당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그 시대 이후 우리는 조금도 더 현명해지지 않은 듯하다. 만일 러셀, 케인스, 러셀이 '2020년은 상황이 어떤가? 많은 여가 시간을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고 있는가?' 하고 묻는 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우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도시에서 오랜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며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더 나은 삶을 위한 진보
자동차 생산자 헨리 포드는 이미 1926년에 주 5일제를 도입했다. 포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생산력이 증진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최초의 경영자 중 하나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노동자들이 늘 일만 하면 언제 자동차를 사서 몰고 다닐 시간이 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진짜 놀라운 통찰이다! 이 시기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니 놀랍다.)
포드처럼 새로운 관행을 따른 회사도 있었지만,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회사도 있었다. 그들은 경제적 문제보다는 여가 시간이 너무 많아지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1960년대 미국 상원은 2000년까지 주 14시간 노동이 실현 가능하리라는 예측 보고서를 냈다. 영향력 있는 두뇌 집단인 랜드 연구소는 인구의 2% 정도로도 미국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케인스, 러셀, 라이트뿐 아니라 많은 지식인들이, 미래 사람들이 훨씬, 훨씬 적게 일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문화 전반이 이와 궤를 같이하면서 새로운 여가 시간을 위해 공원이 생겨나고 야외 유흥이 급증하며 집단 활동이 왕성하게 조직되었다.
1928년 거대 전화 회사 AT&T의 임원 월터 기퍼드는 '지겨운 노동의 나날은 곧 끝날 것'이라는 제목의 인터뷰에서 "기계들이 점점 인간의 어깨에서 짐을 덜어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될 것이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원대한 기회를 얻게 되어 (.....) 삶의 기술을 기르고 예술을 더 잘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래는 밟아 보였고 노동시간은 실제로 단축되었다. 한 세기 전 케인스, 라이트와 달리 이제는 아무도 주 15시간 노동이 당연한 미래라고 보지 않는다. 전일제 직장은 아직도 37시간이다.
상황은 다른 서구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미국에서 주당 근무시간은 1980년대 이래로 증가해 왔다. 20세기 들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간 여행자가 이 소식을 라이트, 러셀 등에게 전한다면 틀림없이 대체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습니까?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이 일합니까?' 더욱 의미심장한 질문도 받을 것이다. '대체 온종일 뭘 그렇게 하는 겁니까?'
노동에 대한 신앙
1880년에서 1940년 사이는 위대한 발전의 시대였다. 이때 전기, 증기기관, 기차, 농기계, 내연기관, 전화, 백신, 자동차, 비행기, 하수처리 체계, 타자기, 전신, 축음기, 라디오, 페니실린 같은 신기술이 들불처럼 번졌다. 고된 노동이 눈부신 진보를 낳았고 진보는 신세계에 대한 대담한 희망을 고양시켰다. 증기기관과 이후에 등장한 디젤엔진이 엄청난 양의 수작업을 대체했으니, 마침내 인간이 좀 느긋해질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올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대량 이탈을 막고 계속 회사에 붙잡아둘 방법들이 새롭게 고안되었고, 결국 인간은 여전히 그물침대에 누울 수 없었다. 19세기말 산업 노동자들은 더러운 작업복을 벗고, 점차 손톱까지 다듬고 펜을 들기 시작했다. 겉보기에 그들은 예전과 달라진 것처럼 보였으나 자본주의 정신은 온전히 유지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일해야 했다. 이제는 사무실에서 노동할 뿐이었다.
니킬 서발은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에서 사람들은 처음에 사무 노동을 가혹한 육체노동에서의 해방으로 보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차츰 사무직이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사무실에서 하는 일은 진짜 일이 아니라는 불만이 나타났다. 오피스 빌딩이 여기저기서 솟아나고 그 빌딩을 채우는 노동과 함께 싹튼 관료제 사회는 아예 새로운 직업, 새로운 업무를 고안하게 되었다.
새로운 발명은 원래 일을 더 쉽게 만들려는 의도였지만, 종종 온갖 종류의 새로운 절차와 새로운 형태의 감독, 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요구했다. 전화 같은 연락 수단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새로운 의사소통 기술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점점 더 많은 일거리를 가져왔다. 노동자는 이를 처리해 나가며 많은 생산물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문서(청구서, 영수증, 계약서, 보고서, 손익계산서)가 생겨났고 더 많은 타자수와 통신물을 나를 더 많은 운송업자" 즉 미국에서 사무직의 초기 급증을 가져왔다.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공간은 점점 더 좁아졌고, 결국 사람들은 유례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건물의 셀 수 없이 많은 사무실 공산, 조그만 네모 칸막이 안에서 일하게 되었다. 관리자들은 문서를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보관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좁은 공간에 더 많은 문서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 효율을 위한 변명, 관리직의 증가
사무직은 여전히 노동시간 단축에 미온적이었다. 물론 현대 노동자들이 사무실 혹은 산업 현장에서 산업혁명 당시보다 더 적게 일하는 것은 분명하다. 1870년에는 평균 70시간 언저리였던 것이 2000년에는 40시간가량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미미한 수준의 단축이다. 계산기가 암산을 대체하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문서 보관과 전달의 수고를 대신하고, 다른 수많은 기술이 절체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인력의 필요를 감축시킨 데 비하면 말이다.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보통 사람이 느리고 편한 속도에 맞춰 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인간이 더 빠른 속도를 내는 경우는 스스로 상당량의 숙고와 관찰을 거친 후거나 본보기, 양심 또는 외부적 압력의 결과다.
근대산업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를 빼놓을 수 없다. 위의 인용은 그가 한 말이다. 테일러는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효율성의 추구와 시간 관리에 바쳤다. 산업 시대의 많은 사상가가 그렇듯 테일러는 게으름을 뿌리 뽑으려는 열렬하고 깊은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또한 나태한 자와 농땡이 부리는 자들에 맞설 완벽한 무기, 스톱워치를 가지고 있었다.
19세기말에 테일러가 스톱워치라는 시간 도구를 휘두르기 시작했을 때, 노동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테일러가 보기에 말이다. 포드 자동차나 싱어 재봉틀 같은 대규모 공장의 노동자는 아주 적은 일을 하면서 바빠 보이는 수법을 꾸준히 길러왔고, 테일러는 공장들이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시간 낭비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다. 테일러의 해결책은 생산공정을 일련의 단순한 행위로 해체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처리과정이 얼마나 걸리는지 관리자가 알 수 있도록 시간을 쟀다. 결국 노동은 일련의 단순 작업이 되었다. 테일러는 노동자를 가치를 생산하는 긴 사슬 속의 단순한 톱니바퀴로 보았다. 그에게 경영이란 각가의 고리 안에서 최대한의 생산성을 짜내는, 꽤 단순 문제였다.
정리하자면
- 과거 많은 지식인들이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노동시간이 감소될 것이라 예측했지만 이는 멋지게 빗나갔다.
-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생산력이 증가하지 않는다.
- 우리는 그 많은 시간 동안 회사에서 무엇을 하는가?
- 노동자와 회사와의 믿음은 무너지고 관리직의 숫자가 늘어났다.
- 증가하는 관리직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보여야 했기에 수많은 가짜 노동을 한다.
-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 많은 고학력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노동시장은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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