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적할수록 무너지는 신뢰성… 숫자의 폭정에 맞닥뜨리다
1947년, 최초로 트랜지스터 반도체 소자가 만들어진 이래 전자 산업은 진공관 소자를 반도체 소자로 바꾸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라디오, 텔레비전, 컴퓨터 등 여러 전자제품에는 크고 깨지기 쉽고 사용 전력도 많이 들었던 진공관 소자를 사용했는데, 이제 오래 사용 가능하고 전력도 훨씬 덜 쓰는 반도체 소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비약적인 발전도 집적회로가 만들어진 사건에 비하면 그 변화는 제한적이었다.
1만 8,000개의 진공관 소자를 연결하여 디지털 회로를 구성했던 최초의 범용 컴퓨터 에니악(ENIAC)과 반도체 소자가 나온 직후 만들어진 컴퓨터를 비교해 보자. 165m2(약 50평)의 공간을 차지했던 에니악에 비하면 반도체 소자를 이용한 컴퓨터 크기는 상당히 작았다. 물론 지금과 같이 손에 들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는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크기다.
컴퓨터는 반도체 소자의 탄생보다는 집적회로가 만들어진 이후 더욱더 커다란 변화를 맞는다. 집적회로 탄생 이전의 전자회로는 개별적으로 만들어진 반도체 소자(Discrete Device)를 직접 납땜으로 연결하거나 커넥터와 함께 인쇄 회로 기판에 손으로 납땜하여 특정한 역할을 하는 모듈로 만들어 사용했다.
이 방식은 수작업으로 해야 해서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고 생산성 증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시스템 성능을 올리기 위해선 더 많은 단위 소자를 연결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많은 수의 단위 소자를 연결하면 그에 비례하여 납땜 조인트와 배선이 많아진다. 이렇게 많은 요소 중 단위 소자나 커넥터, 납땜 불량이 하나라도 발생하면 전체 시스템은 동작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신뢰성 문제가 생길 여지가 커지며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이러한 문제는 시스템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어서 '숫자의 폭정(Tyranny of Numbers)'이라고 부른다.
이 숫자의 폭정을 넘어서 더욱 성능 좋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모든 엔지니어의 목표가 되었다. 숫자의 폭정을 넘기 위해서는 단위 소자 연결을 보다 간단하게, 문제가 덜 생기는 방법으로 바꿔야 했다.
현대적 의미의 집적회로 공정이 탄생하다
벨 연구소에서 반도체 소자가 처음 발명된 후 1950년대 미국 전역에서는 반도체 소자로 새로운 전자제품을 만드는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TI)도 반도체 소자 생산에 뛰어들었다.
그 무렵 엔지니어 잭 킬비(Jack Kilby)는 혼자 사무실에서 '숫자의 폭정'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한다. 저마늄(Germanium, 원소기호 Ge) 한 덩어리 조각 위에 트랜지스터, 캐퍼시터(Capacitor), 저항소자(Resistor Elements)등 여러 가지 단위 소자를 함께 만들고 이 소자를 금으로 만든 실처럼 얇은 와이어로 모두 연결하는 제조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1958년 9월 킬비는 이 방법으로 만든 회로가 작동하는 것을 시현했고 이듬해 2월 특허를 출원한다. 이 방법은 전통적인 마이크로모듈과 비교하여 훨씬 더 작은 사이즈로 만들 수 있었다. 또한, 각 요소를 개별적으로 만들어 조립하는 방식에 비해 고장 확률이 낮았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킬비의 발명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와이어 본딩 방식의 배선은 이전에 비해 신뢰도를 높였으나 그래도 많은 수의 소자를 연결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1957년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기술 개발을 총괄했던 노이스는 진 호에르니(Jean Hoermi)가 개발한 평면 소자 공정 기술에 주목했다. 입체 형태의 트랜지스터를 만든 후 노출된 상태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고 트랜지스터를 만들고 산화막을 위에 남겨 트랜지스터를 보호하는 기술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정이 좋지 못한 까닭에 질 낮은 산화막이 트랜지스터를 오염시켜 망가뜨린다는 이유로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질 좋은 산화막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산화막으로 트랜지스터를 덮으면 표면이 편평해진다. 노이스는 이 평면 소자 공정 기술의 편평한 면에 주목했다.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레지스터, 축전기 등 단위 소자를 실리콘 위에 한꺼번에 만들고 그 위를 산화막으로 덮은 후에 편평한 산화막 위에 금속을 증착하고 식각 하는 방식으로 배선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배선을 만들어서 연결해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 IC)를 제작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로써 위에 널려 있는 연결선을 없애 깔끔한 칩(Monolithic Hip) 구현이 가능해졌다. 단일 집적회로 공정이 가능해지며 전자 산업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완성품이 아닌 부품을 만드는 산업이 압도적으로 발전하며 오히려 시스템 산업을 이끄는 시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에니악은 50평 정도의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집적회로는 소자와 배선을 동시에 작은 공간에 집어넣을 수 있어서 엄청난 소형화가 가능했다. 1971년 출시된 최초의 상업용 집적회로 CPU인 'Intel 4004'는 에니악보다 약 17배 빠른 성능이었지만, 손톱만 한 크기로 출시됐다. 총 2,300개의 트랜지스터가 평면에 집적되어 연결된 Intel 4004는 1W 정도의 전력을 소모했다. 17만 4,000W를 소모하던 에니악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전력을 쓰는 것이다. 소자 하나하나가 사용하는 전력도 이전의 개별 소자보다 감소했지만 배선 길이가 짧아지며 줄어든 전력도 매우 크다. 개별 칩을 연결한 배선은 적어도 수 cm가 되므로 집적회로 내에서 연결하는 배선 길이인 수백 ㎛ ~ 수 ㎜와 비교하면 매우 큰 전력이 소모됨을 알 수 있다.
가격도 개별 소자를 연결하여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장점 중 하나다. 물론 집적회로의 설계 비용이 추가가 되고 매우 비싼 제조 공정 장비가 필요하지만, 어느 수준 이상의 물량을 대량 생산하게 되면 집적회로의 가격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해진다.
부피와 소모 전력, 가격이 획기적으로 줄면서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제품도 출현했다. 컴퓨터는 과거 회사나 연구소 등에서만 쓸 수 있는 기업용 제품이었다. 그러나 집적회로가 나오면서 일반 가정에서도 감당할 만한 크기와 전력이 된 것이다. 그래서 컴퓨터는 개인이 사용하는 기계로 변화했다. 이렇게 반도체라는 '부품 성능의 발전'이 '새로운 시스템의 탄생'을 이끄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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