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이원석 저자)
요즘 같이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시기에 방향성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그중에서도 책을 읽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일까?
우리는 책을 "잘" 읽어야 한다.
무엇을 읽느냐 이상으로 어떻게 읽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많이 읽는 것보다 깊이 읽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고, 또 깊이 읽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읽어야 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책을 통해서 나라는 사람을 완성해 나갈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읽은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쓰는 것이다. 서평이야말로 독서의 심화이고 나아가 독서의 완성이다.
나는 좋은 책과 어려운 책을 만날 때마다 서평을 쓰려고 노력한다.
좋은 책은 온전히 누리고, 어려운 책은 제대로 풀어내기 위함이다. 서평을 쓰는 가운데 책에 대한 이해를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책을 읽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목차
1부 서평이란 무엇인가?
- 서평의 본질
- 서평의 목적
2부 서평은 어떻게 쓸 것인가?
- 서평의 전제
- 서평의 요소
- 서평의 방법
에필로그 서평의 오늘과 내일
1부 서평이란 무엇인가?
서평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서평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서평의 소재는 책이고, 방식은 비평입니다. 그러니까 책을 평하는 글이다.
서평과 독후감은 어떻게 다른가?
독후감이 정서적이라면, 서평은 논리적이다. 독후감은 문자 그대로 책을 읽은 다음의 감상을 담는다. 본질적으로 정서의 반응이다. 직접적인 반응에 가까워 책에 대한 독자의 느낌을 언어로 표현한다. 서평은 읽은 책에 대한 사유를 담는다. 본질적으로 논리적인 반응이다. 물론 느낌이 포함되지만 그 느낌은 논리적 사유로 번역되어 있다. 책에 대한 메타성찰이라고 하겠다.
독후감이 내향적이라면, 서평은 외향적이다. 독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느낌은 소중하다. 그 독자만의 고유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독후감은 독자만의 고유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초점을 두어, 독후감을 쓰는 이가 자신의 다채로운 정념과 직면하게 도와준다. 따라서 독후감 쓰기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정서가 치유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특정한 책을 읽을 때 독자의 내면에 일어나는 특정한 느낌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이 온전하게 표현될 때 치유가 시작된다. 서평은 이와 다르다. 서평의 일차 목적은 서평을 읽는 독자를 자기의 주장으로 끌어들이고, 독자에게 서평자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다. 서평은 해당 책에 대한 서평가의 해석과 평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나아가 설득하려고 한다. 내가 작성한 서평을 통해 그 책을 집어 들거나 그와 반대로 그 책을 멀리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의도가 그렇기에 서평은 타인을 중심으로 작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독후감이 주관적이라면, 서평은 객관적이다. 독후감이 독백이라면, 서평은 대화입니다. 독후감은 독자가 없어도 된다. 혼자 쓰고 끝내도 상관이 없다. 감정을 풀어놓기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반면 서평은 이를 읽어줄 독자가 필요합니다. 서평의 독자는 서평에 반응한다. 즉 서평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반대하게 된다. 이것이 서평을 쓰는 이와 서평을 읽는 이의 대화이다.
독후감이 일방적이라면, 서평은 관계적이다. 독후감은 책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저 나의 느낌을 잘 들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평은 서평에서 다루는 책에 대한 성찰을 전달한다. 서평을 쓰는 이의 사유가 서평을 통해 공유된다. 이러한 공유는 대화적이다. 누군가가 내가 쓴 서평을 읽는다고 끝이 아니다. 책에 대한 그의 반응이 서평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동일하다면, 그 서평은 실패한 셈이다. 성공한 서평은 어떤 것일까? 서평을 쓴 사람이 의도한 반응이 있어야 한다. 보통 의도하는 반응은 서평의 독자가 책을 읽는 것이다.
서평과 독후감은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다른 장르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서평과 독후감은 경유하는 매개와 지향하는 방향과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기에 글을 작성하는 당사자에게 주는 유익도 동일하지 않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독후감이 독자에게 치유의 경험을 제공한다면, 서평은 독자에게 통찰의 경험을 선사한다.
"책은 항상 새롭게 읽혀야 한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도 서평을 통해 구현된다."
모든 독자는 선택한 책을 새롭게 읽는 가운데 자아를 쇄신하고 확장하는 여정에 나서게 됩니다. 좋은 독서는 독자가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를 위해 독자는 한편으로 책을 읽기 전에 자신을 비워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책 속으로 자신을 온전히 던져야 한다.
책은 해석을 거쳐야만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된다. 서평 또한 해석이다. 서평, 즉 북리뷰에서 '리뷰'는 책을 다시 보는 것이다. 새롭게 읽는 것이다. 이는 해석의 주체인 독자가 각기의 다른 자리에 서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모든 서평은 독자/서평자의 다시 읽기이다. 나아가 다른 독자에게 다시 읽기를 제안한다.
고전에는 독자가 새롭게 읽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끝없이 열려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고전 소설 또한 해석의 여지가 무궁하다. 그렇기에 고전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은 저자뿐 아니라 독자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로쟈'라는 필명의 서평가이자 문학 연구자인 이현우는 햄릿에 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고전 텍스트를 '텍스트-무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작품에 대한 해석이 고갈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끊임없이 해석하고 의미의 핵심을 파악하고자 하지만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데, 그게 텍스트-무한의 특징입니다. 고전 텍스트,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텍스트는 거의 여기에 속합니다. 고전처럼 무한한 텍스트와 유한한 텍스트 사이의 격차는 큽니다. 물론 햄릿이 출간될 때부터 무한한 텍스트였던 것은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는 가운데 그것을 버텨 내는 텍스트, 그러니깐 읽고나도 계속 뭔가 읽을거리가 남는 텍스트가 바로 무한한 텍스트이고 텍스트-무한입니다. 햄릿도 처음에는 만만한 텍스트였지만 점점 숭고한 텍스트로 격상되고, 이제는 작품의 경함조차도 의미를 갖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 아주 사적인 독서, 이현우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지금의 고전 또한 당대에는 신간이었다는 사실이다. 고전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독자부터 지금의 독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의 끝없는 해석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지금 아는 위대한 고전이 만들어졌다. 지금의 신간도 여러분의 독서, 즉 해석의 과정을 통해 또 하나의 고전이 될지도 모른다.
좋은 책일수록 해석의 여지가 많고 저자와 독자 간의 대화가 지속된다. 고전이 이름값을 하는 것은 해석의 가능성이 소진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독서에서 해석의 다양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고전 작품이나 좋은 의미의 문제작은 독자를 자기 역량의 한계와 직면하도록 이끄는 가운데 독자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독자는 거듭하여 책을 해석하면서 그 책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동시에 독자 자신도 새로워진다. 이 해석 작업은 말과 글로 표현되어야 한다. 서평은 다름 아닌 논리를 담아내며, 서평가가 읽은 책에 대한 조리 있는 설명과 평가를 문자화한다. 읽고 나서 느낀 감동과 깨달음을 쏟아 내는 것은 서평이 아니라 독후감이다. 독후감이 보여 주는 감동과 깨달음에 논리와 체계를 부여하여 설득력을 배가시킨 것이 서평이니 말이다. 누군가 이렇게 논리적으로 서평을 쓰고, 다른 누군가가 그 서평을 통해서 그 책을 읽는 눈이 열리면 모두가 더 나은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서평의 목적
독서는 그저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책에 대한 독자의 이해와 해석은 계속된다. 해석은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말과 글을 통해 구체적으로 정리되어야 독서는 완결된다. 읽은 것을 가지고 남에게 말하고, 읽은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매우 합당하고 권장할 만한 일이다.
서평 쓰기의 일차 가치는 독자 자신의 내면 성찰에 있다. 서평 쓰기는 작성자가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독서 자체가 그러한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서평 쓰기는 심화된 독서 행위인 것이다. 더욱 깊게 책을 읽는 가운데 자신을 더욱 깊이 읽게 되는 것이다. 서평 쓰기는 우리의 내면과 외면을 이어 주고 통합시키는 좋은 매개이다. 서평 쓰기 자체가 책을 통해서, 책을 읽는 독자 자신의 내면에 몰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서평 쓰기는 묵상하기에 다름없다. 책을 매개로 나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서평을 쓰기 위해 원고지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언제나 두려움을 부른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저항감은 서평을 쓰려하는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일어난다. 이는 모든 글쓰기에 적용된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글 쓸 때 느끼는 저항감에 대한 태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마추어는 일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자신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로는 자신이 결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세상에 두려움 없는 전사나 걱정 없는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최고의 나를 꺼내라, 스티븐 프레스필드
글로 쓰려고 하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러한 두려움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글의 논리와 말의 논리는 다르기 때문이다. 한번 내뱉은 말을 단순히 글자로 옮긴다고 해서 곧바로 글이 되지는 않는다. 두려움을 받아들여야 한다. 회피하지 말고, 당당히 직면해야 한다. 이렇게 두려움을 직면하고 나면 자아 성찰이라는 보상이 따른다.
서평과 삶
자아 성찰이 서평 쓰기의 결론은 아니다. 진정한 종결은 어디까지나 삶을 통한 해석이자 실천이다. 이는 물론 서평이 보여 주는 가능성을 극대화한 이성적인 논의일 것이다. 그렇더라고 이상은 중세에 선원이 기준으로 삼던 밤하늘의 북극성과도 같다. 항해를 통해서 북극성에 다다를 수는 없어도 북극성을 보며 항해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서평은 분명 논리에 토대를 두는 지성의 작업이다. 그렇지만 그 귀결은 삶의 변화이다. 적어도 올바른 독서, 성장하는 독서를 지향한다면 삶은 변화한다. 좋은 책을 잘 읽으면, 삶의 지평이 넓어진다. 서평은 이러한 독서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서평 쓰기의 귀결은 독서를 통해 획득한 자아와 타자에 대한 깨닮음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앎과 삶의 일치, 즉 인격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서평을 쓸 때마다 이런 마음을 되새기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평 쓰기의 목표 자체에 대해서는 한 번쯤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서평과 잠재 독자의 관계
서평의 최고의 수혜자는 물론 서평자 자신이다. 그러나 서평은 관계적이며, 쌍방적이다. 책과 잠재 독자를 연결하는 하나의 매개인 서평은 잠재 독자와의 대화인 동시에 저자와의 친교이거나 대결이다. 매개로서 서평은 책과 잠재 독자 사이를 연결하거나 반대로 단절하는 것을 의도한다. 이러한 측면이야말로 서평의 참된 목적이자 존재 의의이다. 서평은 무엇보다도 잠재 독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서평의 영향력
첫째, 서평은 책에 대한 잠재 독자의 선이해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서평을 통해 형성된 선입관은 책을 바라볼 때 렌즈 구실을 하고, 이 렌즈는 서평가의 관점으로 착색되어 있다. 관점이 배제된 요약은 서평이 아니다. 기껏해야 책 소개일 따름이며 실은 소개조차 소개하는 이의 취향과 입장이 스며들 수밖에 없다. 요약 자체가 무얼 덜어 내고, 무얼 남길지를 고르는 소개자의 가치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둘째, 서평은 책에 대한 잠재 독자의 독서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책에 대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선이해가 구현된 결과이다. 긍정적인 서평의 작성은 그 책이 얼른 세상에 읽히기를 바라는 목적에 따른 것이다. 대체로 서평가는 애서가인지라 책에 대한 애정이 서평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자가 그 책을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 설혹 서평으로 소개하고 추천하는 그 책을 독자가 읽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 책에 담긴 핵심 주장은 명확하게 이해하고 수용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서평가의 마음이다.
대체로 서평은 '제가 읽어보니 좋았습니다. 당신도 한번 읽어 보지 않겠습니까?' 하는 식이지만, 일부 서평은 그와 반대로 '제가 읽어 보니 영 아니었습니다. 당신만이라도 절대로 읽지 마십시오'라고 말한다. 좋은 책 못지않게 나쁜 책도 쏟아져 나오는 요즘 같은 때일수록 확실히 이러한 서평도 필요하다. 모든 서평이 사회적 봉사지만 비판적 서평은 더욱 그렇다. 그런 서평에는 쓸모없거나 해롭기 그지없는 책에 내 한 몸(의 돈과 시간과 정신)을 던진 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이 깔려 있다. 내가 그 책을 사고 읽는 데에 값을 치른 대신에 다른 잠재 독자의 불필요한 손실을 막고자 한다.
가벼운 서평과 무거운 서평
가벼운 서평이 특정한 책의 독서를 제안하는 것이라면, 무거운 서평은 특정한 책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미 읽은 책을 서평자의 해석에 따라 다시 읽어 보기를 권유하는 것이 후자의 역할이다.
2부 서평은 어떻게 쓸 것인가?
무엇을 왜 읽는가?
서평을 쓰려면 무엇을 읽어야 할까? 이에 대해 원칙적인 답은 '무엇을 택하든 아무 상관없다'이다. 무엇을 택하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평을 쓰기 위한 독서에 앞서 두 가지를 염두에 두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는 독서의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독서의 태도이다.
우선 왜 읽는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의 목적이 명확하고 올바르다면 그가 철학 서적을 읽든, 문학 서적을 읽든 뭐가 대수이겠는가? 독서의 목적은 다양하다. 인격 성숙, 정보 습득, 쾌락 추구, 자기 과시등 셀 수도 없다. 가장 고전적인 목적은 인격 성숙으로, 종교인이 자기 종교의 주요 경전을 읽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서평자는 무엇을 위해 책을 읽을까? 기본적으로는 앞에서 말한 목적과 다를 바가 없다. 그저 각각의 다양한 목적에 따라 읽고 독자와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할 뿐이다. 그러니 무엇을 읽느냐보다는 왜 읽느냐에서 도출되는 질문인 무엇을 소통하려 하느냐가 중요하다. 성숙에 도움을 주는 심오한 서적, 정보를 제공하는 유용한 자료, 쾌락을 안겨주는 재미있는 책자 등을 소개하거나,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것을 비판하기 위해 서평을 쓴다.
우상 숭배와 우상 타파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책에 대한 태도가 양가적이어야 한다. 한 면으로 숭배자가 되고, 다른 한 면으로 비판자가 되어야 한다. 좋은 서평을 쓰려면, 한편으로는 책에 매료되어 다가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책으로부터 냉철하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 책에 매료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책의 매력을 알아본다는 말이다. 이는 책에 들이는 시간과 마음으로 드러난다. 한 번을 읽더라도 깊이 들어가 책의 정수, 책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책 속으로 들어갔다 나올 때에 나의 세계가 흔들릴 정도로 읽어야 한다.
원리로 말하자면, 사랑한 자가 미워할 수도 있다. 미움은 사랑의 역전이다. 숭배자만이 배교자가 될 수 있다. 정확하면서도 섬세한 비판은 그만한 애정을 들인 자만이 가능하다. 가장 좋은 적이야말로 가장 좋은 친구이다. 좋은 적은 나의 장점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좋은 비판가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어떠한 책에 대해 분노를 느끼거나 비판을 하더라도 동시에 그 책의 매력요인에 최대한 공감해야 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비판인 것이다.
적과 친구 사이에서
책을 읽고 나서 서평을 쓰려면, 책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서평은 정치적이다. 독일의 보수적 법학자인 칼슈미트에 따르면, 정치의 세계에서는 아군과 적군밖에 없다. 적이 아니면 친구인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서평에는 숭배와 비판이 공존한다고 이야기했다. 숭배는 친구와의 우정에 가깝고, 비판은 적과의 대결에 가깝다.
먼저 책 자체에 대한 기본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 적이냐 친구냐 하는 두 가지 입장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의도적으로 나의 입장을 결정한다기보다는 책과의 대화 내지는 토론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다시 말해서 친구에게도 다소간 흠이 있을 수밖에 없고, 적수에게도 일정한 공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깐 적이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옳고, 친구라도 지적할 것은 지적해야 하는 것이다.
책에 대한 매료가 책에 대한 반박에 앞서고, 논지에 대한 이해가 주장에 대한 비판에 선행하며, 저자에 대한 공감이 저자에 대한 공격을 예비한다. 그렇기에 좋은 요약은 공정한 평가의 전제가 된다. 요약은 성실한 독서에 따른 이해의 결과요, 증거이다. 요약이 서평의 본질은 아니지만, 요약 없이 서평을 작성할 수는 없다. 평가가 열차라면, 요약은 레일이다. 따라서 평가 없는 서평은 공허하나, 요약 없는 서평은 맹목적이다. 성실한 독서와 이를 통한 적절한 요약 다음에 나름의 평가가 따라야 한다.
요약
서평의 핵심 요소는 요약과 평가이다. 앞서 말했듯이 요약 없는 서평은 맹목적이고, 평가 없는 서평은 공허하다. 맥락화에 기초한 평가가 없다면 서평은 의미가 없지만 그 평가의 근간에는 충실한 요약이 자리해야 한다. 책에 대한 요약으로 통제되지 않은 평가는 목적지 없이 날아다니게 된다.
서평의 토대
독서의 첫 결실 또한 평가가 아니라 요약이다. 충실한 독자라면 모름지기 자기가 읽은 것을 간명하게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의 핵심을 명확하게 도출하고, 이를 바로 자기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독서는 독자와 저장의 대화이다. 올바른 대화는 서로 상대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올바른 독서는 독자의 몰입을 요구한다. 책에 충분히 집중해야 한다.
서평 작성 시에는 지적 몰입과 정서적 몰입이 모두 필요하지만, 특히 전자가 중요하다. 독후감에는 정서적 몰입이 더 중요하다. 책에 지적으로 몰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루려는 책의 서론과 차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책의 전체 구도와 흐름을 머리에 새기면 책을 읽을 때 수많은 문장과 문단 속에서 조금 덜 헤매게 되고, 조금 더 수월하게 맥락과 요지를 정리할 수 있다.
각 장을 읽고 난 후에는 생각으로 혹은 기록으로 핵심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모든 독서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평을 작성하려면 그렇게 하는 편이 유익하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전체의 핵심을 정리해야 한다. 목차를 앞에 펼쳐 놓고, 다른 이에게 장별로 나절 별로 요지를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되면 좋다. 요약을 어느 정도의 분량으로 제시할지는 서평가의 자유이다. 서평가의 해석과 평가에 튼실한 기반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단 한 문장이 되었든, 서평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든 상관없다. 서평의 독자, 즉 서평이 다루는 책의 잠재 독자가 책의 요약을 기반으로 삼아서 서평가의 평가를 가늠할 수 있으면 된다.
요약은 서평이 아니다
독자가 서평을 읽기 전과 후가 달라진다. 서평을 읽고 나면 그 책에 대해 기존에 없던 입장이 형성되거나 기존에 가졌던 입장이 전환된다. 서평이 독자에게 책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서평이 제공한 관점 위에서 독자의 더 나은 평가, 즉 해석이 가능해진다.
평가의 의미
서평의 핵심은 '평'이다. 이는 평가, 곧 값을 매기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비교인 것이다. 비교란 다른 것과 견주어 가치를 매기는 작업이다. 평가는 선택 그리고 옹호 혹은 배제이다. 이렇게 견주고 매기려면 기준을 세워야 한다. 평가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맥락화'이다. 서평은 다루는 책의 맥락화에 다름 아니다. 내부 정합성을 논하는 것도 물론 평가의 하나이다. 논리와 구조의 정합성은 기본 항목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외부 맥락화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을 값을 매기는 평가, 삶과 죽음이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구별의 핵심으로 보기 때문이다.
좋은 서평은 바른 맥락 속에 책을 자리매김한다.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 연결해 특정한 자리를 찾아 주는 것이 서평의 역할이다. 특정 분야의 서적에 대한 전문가의 서평을 배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주제에 관련된 학회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학술지의 리뷰와 서평 논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서평을 통해 특정한 서적을 계열화, 즉 맥락화하는 방식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하나의 책이 가진 의미론적 맥락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서평이 필요하다. 또한 하나의 책이 품고 있는 다양한 해석은 갈수록 예리하게 다듬어진다. 모순되거나 상호 긴장 관계에 있는 해석을 통해 책의 의미론적 세계가 정련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자신의 기준과 안목을 세우는 겁니다. 이를 튼실하게 세우지 못하면, 그저 단순한 촌형으로 일관하게 된다. 빼어난 재기로 이를 보완할 수도 있으나 하나의 서평집으로 묶어서 책을 낼 정도라면, 고유한 시각이나 일관된 입장 같은 것이 드러나야 옳다.
공부만 하고 자기 입장이 없으면 그것은 그냥 사전 덩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또 공부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 입장만 가지게 되면 남과 소통할 수 없는 고집불통이나 도그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공부해서 자기 입장을 만들고, 또 자기 입장을 깨기 위해 또 공부하고, 이런 것이 공부이고 그게 책 읽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이 말은 2007년 1월 8일 방영한 '세상의 무지에 맞서라 - 장정일의 공부'에서 '공부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장정일이 한 답변이다. 서평가로서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귀를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입장'이라는 것이 바로 책의 평가를 위한 기준이고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을 갖추려면 성실한 선행 독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든 서평가는 독서가이다. 원칙적으로는 독서가일 때에만 서평가가 될 수 있다.
서평을 제대로 쓰려면 모름지기 책을 완독해야 한다. 여기에 책 자체를 다 읽고 이해하는 것만큼 책을 둘러싼 맥락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책은 교양의 정수를 보여 준다. 생각해 보자. 누구도 인류사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문 서적을 모두 읽어 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의 스승 파리스 신부가 당테스에게 들려준 조언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로마에서는 서재에 오천 권 가까이 책을 가지고 있었지. 그것들을 읽고 또 읽는 동안에 정성 들여 가려낸 백오십 권의 책만 있으면, 그것이 비록 인간의 지식을 완전히 요약한 것이라곤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돈 인간이 알아야 할 만한 것은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 그래서 나는 삼 년 동안 그 백오십 권의 책만을 자꾸 되풀이해서 읽었네. 그래서 내가 체포됐을 당시엔 그 책들을 거의 다 외고 있었으니까. 감옥에 들어와선 기억력을 더듬어서 그것들을 완전히 생각해 낼 수가 있었지. 지금이라도 투키디데스, 크세노폰, 플루타르코스, 티투스, 리비우스, 타키투스, 스트라다, 요르난데스, 몽테뉴, 셰익스피어, 스피노자, 마키아밸리, 보쉬에 같은 건 암송해서 들려줄 수 있네. 지금 열거한 이름들은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만 뽑은 거야. - 몬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레상드르 뒤마
파리스 신부는 맥락 파악을 위한 핵심 교양을 제공한다. 그리고 훌륭한 서평은 이러한 핵심 교양을 지향한다. 훌륭한 서평가는 모두 교양인이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핵심 교양을 널리 전파하려고 하는 운동가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서평가가 명심해야 할 한 가지는 자신의 중심을 잡는 일이다. 자기 자신만의 해석학의 기둥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훌륭한 서평가는 자신의 해석학적 입장을 분명하게 정립하고 있어야 한다.
평가의 요소
평가의 본질 자체는 매우 단순하다. 비교를 통한 맥락화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실제로 따져 보아야 할 세부적인 평가 항목은 다양하다. 당장 책의 제목과 목차부터 시작해야 한다. 책을 구성하는 형식이나 주요한 논지, 이를 떠받치는 논거 등 책의 모든 것이 평가의 대상이다. 독자를 뒤흔드는 문제적인 책일수록 다룰 것이 더 많아진다. 이는 좋은 의미로건, 나쁜 의미로건 매한가지이다. 하나의 서평에서 이 모두를 다루기는 어렵다. 열심히 읽고 숙고하다 보면 서평을 쓸 때 내용을 덜어 내는 것이 외려 일이 된다. 선택과 배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 제목의 의미
- 목차의 분석
- 문체 이해
- 지식과 논리
- 번역 평가
- 작품 속으로의 이입
서평의 방법
일단 생각하라
서평을 위한 독서는 기본적으로 정독이다. 정밀하게 읽고 깊이 있게 파고들어, 한 번을 읽더라도 제대로 천천히 읽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반복하여 읽어야 한다. 책의 내용이 깊거나 어렵다면, 더욱 그래야 한다. 슬로푸드가 우리 건강에 유익하고, 슬로 라이프가 우리가 꿈꾸는 삶이라면, 슬로 리딩은 우리 영혼을 위한 독서이다. 동시에 좋은 리뷰의 전제이기도 하다. 훌륭한 저작은 성실한 독자의 머릿속에 느낌표와 물음표가 넘실대게 만든다. 저자의 최선이 담긴 작품은 독자의 지적이고 정서적인 최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최선은 느리고 세밀한 독서에서 시작된다. 섬세하고 차분하게 독서하다 보면, 자연스레 여러 생각의 편린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이렇게 촉발된 사유는 그 순간에 곧바로 붙들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휘발되고 만다. 따라서 메모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메모의 대상은 두 가지이다. 먼저 독서하는 책의 문장이다. 우리의 생각을 자극하는 문장을 발췌한다. 물론 굳이 발췌하여 적는 대신에 밑줄을 긋거나 특정한 기호로 표시하거나 해당 지면의 귀퉁이를 접을 수도 있다. 다음으로 책을 읽고 생각나는 바를 적는다. 발췌한 문장이 촉발한 나의 사유를 기록하는 것이다. 여러 편의 단상이 쌓이면 자연스레 한 편의 리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독서의 자극을 통해서 반짝하고 떠오른 생각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지 말고 곧장 기록하여 저장해야 한다. 서평은 이 단상을 논리적으로 배열한 결과물일 따름이다.
지금 바로 글을 쓰라
펜을 들거나 자판을 두들겨라. 이제 쓰면서 생각해야 한다. 물론 생각 자체는 이미 독서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서평을 쓰면서 고심하는 내용의 상당수가 책 읽기를 통해 이미 정해진 생각을 언어화하는 것이다.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어느 정도 책에 대한 생각의 줄기가 잡혀 있어야 한다. 주요한 논지를 끌어내고, 지금 여기에 자리를 매길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서평을 쓰는 토대가 된다. 서평의 흐름은 스스로 확정한 이해의 틀 위에 정해지기 때문이다. 요약은 책에 대한 내 생각의 근간이다. 만일 책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면 서평은 쓸 수 없다.
서평을 위한 독서는 정독이 기본이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면, 자연히 풀리기 마련이다.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나 막 서평을 쓰기 시작할 때는 머릿속에 그 책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원고지나 키보드에 글을 쭉 써 나가다 보면, 어느샌가 자연스레 글에 질서와 형상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의식 이면에 자리하던 모호한 느낌과 판단이 하나의 일관된 틀 속으로 짜여 들어가 언어화되는 것이다.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자라게 되는 것이다.
첫 문장에 대하여
전문 작가가 아니라면, 첫 문장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다른 서평을 뒤적여 보세요. 그러면 의외로 첫 문장이 소박하고 평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첫 문장이 딱히 훌륭하거나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바라건대 문호들의 글쓰기 법에 현혹되지 마라. 서평가는 미문가가 아니다.
문단의 구성
이는 모든 글에 적용되는 기본 원리로, 하나의 문단에는 하나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 이에 따라서 각 문단은 하나의 문장으로 축약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축약된 문장을 한데 모아 놓으면 글 전체의 요약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각 문단의 분량은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각 문단의 분량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모든 문단을 한두 문장 정도로 이어가는 것도 곤란하다. 독후감이라도 이렇게 쓰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이는 문단의 존재 이류를 모르는 것이다. 하나의 문단은 하나의 사유에 사용한다. 사유를 제시하고 논증하고 부연하고 상술한다. 인용이 있으면, 설명이 필요하다. 주장이 있으면, 논거가 따라야 한다. 서평은 서평자의 사유를 통해 저작의 논지를 보여 주고 평가해야 한다.
말 고르기
지나치게 어깨에 힘을 준 평가는 가급적 멀리하는 것이 좋다. 만일 익숙하지 않거나 비교적 전문적인 단어로 간결하게 정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통찰을 과시하고 싶다면, 최대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전개해야 한다. 물론 서평을 통해 여러분의 지식을 과시하는 것도 나름대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움을 주려면 친절하게 풀어 주어야 한다. 서평은 본질상 서비스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편이 좋다. 모든 단어와 표현과 사상과 논지를 독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개해야 한다. 모호하게 전개된 것은 가급적 분명하게 다듬고, 과도하게 압출된 것은 가능한 한 평이하게 풀어내야 한다. 평이하고 분명하게 독자에게 다가가는 만큼 서평의 가치가 올라간다.
인용의 방식
서평은 잠재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우선 지성을 통한 설득을 의도하지만, 정서적 감화로 독자를 사로잡기도 한다. 이를 동시에 겨냥한 좋은 방식 가운데 하나가 서평의 대상이 되는 책에서 글을 발췌하는 것이다. 물론 핵심을 원저자의 글로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하지만 비단 그게 아니라도 적절하게 인용한다면, 마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제공되는 전채처럼 그 책에 대한 독자의 식욕을 돋울 수 있다. 그렇다. 인용은 그저 전채이다.
마무리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까? 이 또한 훌륭한 서평에서 적절한 모델을 구할 필요가 있다. 좋은 서평을 읽는 것만큼 좋은 학습도 없다.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반드시 교훈적으로 마치거나, 멋들어진 미문으로 마감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일독을 권할 만한 자신만의 이유를 간결하게 내세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반대로 눈길조차 주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고치고 또 고쳐라
이미 말했듯이 우선은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은 혹자에게는 자신의 벌거벗은 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간되어 서점에 진열된 서평집과 이런 글을 비교하면 곤란하다. 활자화된 글은 대체로 많이 다듬어진 것이다. 몸매를 가다듬고 여기에 어울리는 옷을 입혀 놓은 상태이다. 저자 자신도 여러 번 손을 볼뿐더러, 여기에 편집부가 가세한다. 그런 글을 기준 삼아 자신이 갓 쓴 글을 들여다보면 어색하기 그지없다. 초고를 계속 퇴고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갈수록 더 향상된다. 명사와 형용사가 분명하게 선택되고, 적합한 위치에 놓게 된다. 각 문장의 구조가 정교해지고,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단단한 문장이 된다. 각 문단의 내적 응집력도 강화되고, 각 문단 간의 외적 정합성도 증대된다. 당연히 이러한 정련 과정에서 서평이 담고 있는 정보량도 늘어난다. 정보의 양이 늘고 정보의 순도가 높아진다. 수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것은 독창적 서평이 아니라 훌륭한 서평이다. 위대한 서평은 아닐지라도, 잠재 독자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서평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서평일 것이다.
좋은 서평을 참고하라
모든 배움이 그러하듯이 서평에도 모범이 교육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좋은 서평을 읽어야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좋은 서평을 한눈에 알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처음에는 일단 어떤 서평이 됐건 닥치는 대로 읽어야 한다. 가급적 서평가로 잘 알려진 이들의 글을 먼저 손에 들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시중에 나온 서평집도 대부분 일독할 가치가 있다. 서평집은 독서가의 선물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서평가는 독서가인 동시에 애서가이다. 독서가는 책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언제나 옳다. 애정이 이끌기 때문에 방향은 빗나가지 않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미디어를 망라하여 좋은 서평을 찾아서 읽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요는 꾸준히 읽고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쓸 것인가
서평의 분량은 원칙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 그저 단 한 줄의 서평도 가능하고, 논문 형식으로 작성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단행본 한 권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서평가가 원하는 만큼 자유로이 작성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평가의 의도이다. 서평가가 책을 어떻게 다루고, 어느 정도로 소개하며 비판할 것인가에 따라 분량이 정해진다.
만일 가장 기본적인 분량을 말하라면, A4 한 장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A4 한 장은 200자 원고지 8매 정도이다. 적은 분량도 아니고, 많은 분량도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 분량으로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어야 서평가의 기본 체력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원고지 2-3 매부터 시작하더라도 꾸준히 써 나가면 곧 A4 한 장은 거뜬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꾸준히 쓰는 것이 관건이다.
읽고 나서
책을 읽기 전에는 서평에 대한 개념이 정말이지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독서 이후에는 독후감과 서평의 차이에 대해 명확하고 분명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앞으로 블로그에 독후감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올바른 이정표를 하나 얻은 느낌이다. 별도의 서평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서평을 꾸준하게 작성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아가 내가 책을 읽고 이를 정리하는 방식이 독후감과 서평 중 어느 쪽을 지향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자의 뇌를 훔치는 코어리딩을 읽고서 (1) | 2023.11.17 |
---|---|
레버리지(LEVERAGE)를 읽고서 (10) | 2023.08.09 |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 : 불가능을 뛰어넘어 최후의 승자가 된 사람들을 읽고서 (22) | 2023.06.12 |
재무제표 모르면 주식투자 절대로 하지마라를 읽고서 (10) | 2023.04.08 |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서 (0) | 2023.02.25 |
댓글